난파선은 기억이면서 오염원이다
난파선은 대개 역사적 유물이나 항해의 장애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군수품을 실은 배라면 바다 밑에 남은 것은 선체만이 아닙니다. 소금물은 선체와 탄약 껍데기를 천천히 부식시키고, 안에 남은 화합물이 주변 환경으로 이동할 통로를 만듭니다.
2026년 Marine Pollution Bulletin에 실린 연구는 이 오래된 전쟁의 흔적을 현재형의 환경 질문으로 바꿉니다. 북해의 난파선 세 곳에 푸른홍합(Mytilus edulis)을 몇 주간 가두어 두고, 군수품 성분의 노출과 생물학적 반응을 함께 살폈습니다. 핵심은 난파선이 위험할 수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위험을 어떤 증거로 분리해 읽을 것인가입니다.
검출은 피해와 같은 말이 아니다
원 논문은 북해 난파선 주변의 물과 퇴적물에서 TNT가 나노그램/리터 수준으로 검출됐다고 정리합니다. 연구진은 홍합의 해독과 항산화 방어에 관여하는 효소 활동, 소화샘의 리소좀에 쌓이는 대사산물도 측정했습니다. 난파선에 노출된 홍합에서 효소 활동과 대사산물 축적에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다는 결과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단계가 두 개 있습니다. 첫째는 오염원이 실제로 화합물을 내보낸다는 화학적 증거입니다. 둘째는 그 환경에 놓인 생물이 세포·생화학 수준에서 반응한다는 생물학적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물고기 개체군이 줄었다거나 생태계 전체가 무너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번 실험이 직접 보여 준 범위는 노출과 생체지표의 변화이며, 장기적인 개체군 규모와 먹이망 영향은 별도의 조사 대상입니다.
이 구분은 경고를 약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추가 측정이 필요한지 알려 줍니다. 검출 농도, 영향 거리, 노출 기간, 종별 민감도, 번식과 생존의 변화가 서로 다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한 척의 사례가 반복 가능한 패턴이 될 때
연구 설명 자료가 소개한 UC-30은 1917년 침몰한 독일 잠수함입니다. 당시 기뢰 18개와 어뢰 6발을 싣고 있었고, 승조원 27명이 사망했습니다. 2016년 발견된 뒤 덴마크 해군 잠수부가 난파선과 주변에서 물·퇴적물·생물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물기둥과 해저, 생물에서 TNT 흔적이 확인됐다는 보고입니다.
UC-30 하나만으로 북해 전체의 상태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독립적인 2025년 연구가 중요합니다. 벨기에 연안의 제2차 세계대전 난파선 두 곳에서는 수동 채집기, 우리에 넣은 홍합, 주변 어류를 함께 조사했습니다. 두 난파선에서 폭발물 성분의 누출과 생물체 내 흡수가 확인됐고, 홍합과 어류에서는 세포막 손상과 산화 스트레스와 연결되는 생체지표 변화가 보고됐습니다.
두 연구가 합쳐 주는 것은 ‘모든 난파선이 같은 위험을 가진다’는 결론이 아닙니다. 군수품이 남아 있고 선체가 부식되며 주변 생물이 노출되는 조건에서는, 화학적 누출과 생물학적 반응을 현장에서 측정할 수 있다는 더 좁고 단단한 결론입니다.
1만 개를 한꺼번에 치울 수 없는 이유
덴마크 환경보호청의 2024년 위험평가 보고서는 덴마크 해역에 1만 개가 넘는 난파선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보고서가 예시로 조사한 유틀란트 서해안 약 900제곱킬로미터 구역에서는 난파선 77개가 확인됐고, 그중 12개가 두 차례 세계대전과 연결됐습니다. 군수품 누출로 화학적 상태에 미칠 잠재적 영향이 큰 것으로 분류된 것은 4개였습니다.
마지막 숫자를 실제 누출률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특정 구역에서의 1차 분류 결과이며, 선체가 지금 오염을 내보내고 있다는 확인과는 다릅니다. 대신 이 결과는 관리의 현실을 보여 줍니다. 목록이 수천 개라면 ‘전부 제거’는 출발점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난파선을 먼저 조사할지 정하는 정보 체계가 필요합니다.
보고서가 제안하는 위험평가는 난파선의 연식과 화물 같은 난파선별 정보, 퇴적과 수심·수층 같은 장소별 정보, 선체가 열릴 가능성, 열렸을 때의 오염물 양과 영향 거리를 함께 보도록 합니다. 해류와 해저 지형, 인간 활동에 따라 같은 화물도 다른 위험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거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선별이다
오염을 발견했으니 즉시 건져 올리거나 현장에서 폭발물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처리 방식 자체가 주변 퇴적물을 흔들거나 오염물의 이동을 늘릴 수 있어, 자동으로 안전한 해법은 아닙니다. 덴마크 보고서도 모든 난파선에 같은 처방을 적용하기보다 위치·상태·누출 가능성·예상 영향을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권합니다. 일부가 퇴적물에 묻혀 있다면 노출과 이동 가능성이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첫 단계는 감정적인 선택이 아니라 측정 설계입니다. 군수품 적재 여부와 선체 상태를 확인하고, 물과 퇴적물에서 화합물을 추적하며, 홍합처럼 한 장소의 노출을 기록하는 생물지표를 함께 봐야 합니다. 그다음에야 장기 모니터링, 접근 제한, 회수 또는 다른 완화 조치 중 무엇이 비례적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가 바꾼 질문
이번 연구의 의미는 바다 밑에 위험한 난파선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 발견했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질문의 단위를 바꿨다는 데 있습니다. ‘난파선이 몇 개인가’에서 ‘어떤 난파선이 어떤 해저 조건에서 오염을 내보내며, 그 신호가 생물에게 어디까지 이어지는가’로 이동한 것입니다.
확정할 수 있는 것은 군수품을 실은 일부 난파선이 현재도 화학물질의 점오염원이 될 수 있고, 현장 생물지표가 그 노출에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아직 확정할 수 없는 것은 모든 난파선의 위험 크기와 장기적인 개체군 피해입니다.
역사는 가라앉았지만, 물질의 수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난파선을 보존할 것인가 제거할 것인가라는 이분법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느 곳이 실제로 위험한지 계속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일입니다.